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아일랜드 관계 (문단 편집) == [[북아일랜드]] 문제 == [[파일:external/www.foreignstudents.com/ireland_map_flags.png]] [[파일:oss.png|width=800]] ↑아일랜드와 영국 북아일랜드를 잇는 고속도로의 아일랜드측에 설치된 영국 북아일랜드 진입 표지판에 '''[[통일|ONE]] --NORTHERN-- [[아일랜드|IRELAND]]'''라고 낙서가 되어있다.[* [[https://www.google.com/maps/@54.1137717,-6.3651364,3a,75y,328.47h,96.46t/data=!3m6!1e1!3m4!1smgfdePHXbRu0q_xXzPQH_w!2e0!7i16384!8i8192|구글 스트리트뷰]]에서 확인 가능하다.] [youtube(4n8YCBbhBEY)] 폴란드볼 유튜버 No Idea Animation의 영상. 1937년부터 1999년까지 [[아일랜드]]의 헌법에는 '[[아일랜드]]의 국토는 [[하나의 중국|아일랜드 섬 전체와 그 부속도서 및 해역으로 한다]]'(제2조)는 규정이 있었다. 단 '민족의 영토가 재통합될 때까지는 아일랜드 헌법은 남부 26개 주에만 적용된다'[* 위의 유튜브 영상 36초부터.](제3조) 라는 구절도 있었다. 아일랜드의 입장에서는 '영국이 자국의 일부를 무단 점거 중'이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북한 문제와 맥이 비슷하나 남북관계와 달리 양국 사이에는 정상적인 외교가 작동한다는 차이점도 명백하다. 그러나 1998년 4월 [[북아일랜드]] 문제와 관련해 영국-아일랜드 간에 "[[벨파스트 협정]]"[* 성 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이라고도 부른다. (성 금요일은 [[부활절]] 이틀 전의 금요일)]이 맺어지자, 같은 해 6월 19차 헌법개정으로 영토 관련 부분이 삭제되었다. 대신 해당 조항은 "아일랜드의 통일이 민족의 굳은 의지임을 선언하되, 그것은 북아일랜드 주민의 동의를 통한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수정되었다. 그래서 명목상으로는 북아일랜드를 영국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고 언젠가 반환받을 영토로 간주한다. 즉, 아일랜드 헌법상 북아일랜드는 자국의 영토와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현재 아일랜드 정부는 북아일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다는 사실도 묵인하며,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더블린]]에서 경기를 치를 때는 영국 국가를 연주해 준다. 반면 아일랜드 외교부는 잉글랜드 런던에 주영 자국 대사관을 두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주요 도시에는 자국의 총영사관을 두고 있으나 벨파스트를 포함한 북아일랜드에는 두지 않는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과의 주권 분쟁보다도 행정력 낭비의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 있다.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위시한 얼스터 지방 내에도 가톨릭교도가 1/3이 있었기 때문에 북아일랜드 내에서 또 신/구교도끼리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 지역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북아일랜드)|피의 일요일]]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체로 북아일랜드는 어느 시대에나 신교도 친영파의 세력이 우세했고, 친영파 신교도들은 UDA, UVF 등의 무장민병대들을 조직하고 IRA와 충돌하며, 일부 친IRA 성향의 아일랜드인들에게도 위협을 가했다. 결국 통일과 영토 회복에 대한 열망과는 달리, 북아일랜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친영파 신교도들의 동의를 얻고 그들을 국민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여건 때문에 아일랜드 통일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북아일랜드인들의 과반수가 찬성하지 않는 아일랜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다수결 원칙에도 어긋난다. 현재는 조금씩 평화 분위기가 불고 있다. [[IRA]]는 2005년 소수의 원칙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무장해제하였고 대부분의 남&북아일랜드인의 지지를 얻어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재확인되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북아일랜드 공동정권 재출범을 위한 합의안 초안을 제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328420|#]] 그리고 3년만에 공동정권을 재출범하기로 합의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329187|#]] 영국 정부가 북아일랜드 협약을 변경하려 하는 데 대해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가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56327?sid=104|#]] [[브렉시트]] 이후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관계]]는 상당히 미묘하게 재정립되었다. [[유럽연합]]에 속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시장은 사실상 하나로 통합된 반면, 북아일랜드와 EU를 탈퇴한 영국 본토와는 무역 장벽이 세워져 있어서 사실상 EU 가입국가인 아일랜드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 영국 본토와는 단절된 상황이다. 근데 여기서 영국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를 아예 단절시켜버리는 식으로 나오면 반대로 북아일랜드의 친아일랜드 지지 세력이 반발하게 되어 있어서 영국은 어쩔수 없이 북아일랜드만을 EU와 연계시킨 상황인 것, 이는 [[벨파스트 협정]] 이후 북아일랜드 정세를 안정시키시 위한 영국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일단 영국 정부는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간의 상품의 통관 간소를 대책으로 내세웠지만 1920년대 이래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유래없이 가까워진 이 상황에서 친영 연합주의자(영국 잔류를 주장하는 신교도들)의 반발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급진 연합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에 참여하는 것 역시 거부하고 있다. 반면 친아일랜드계인 북아일랜드 가톨릭 쪽에서는 내심 영국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아일랜드와 밀접하게 연결된 지금 상황을 즐기는 중이다. 점점 수가 줄어들어 전체 주민의 30% 정도로 비율이 내려간 신교도들과 달리 북아일랜드 가톨릭 교도들은 전체 인구의 40%를 상회하며 오히려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구교-신교 비율이 역전된 상황에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지금처럼 더욱 가까워지면 벨파스트 협정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할 시 [[아일랜드 통일]]이라는 오랜 아일랜드 민족의 염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보기 때문이다.[[https://www.etoday.co.kr/news/view/2247984|#]] 물론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도 현상 유지를 원하는 이들이 많은 터라 현재까지는 여전히 북아일랜드의 영국잔류지지율이 더 높은 편이다. 최근(2022년 12월)에 조사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통일지지는 35%, 영국잔류는 47%의 지지율을 보였다[[https://www.ark.ac.uk/nilt/2022/Political_Attitudes/REFUNIFY.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